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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성공못할거야"
고정관념과 싸워 이긴 역대 최고의 슈터

레지 밀러가 체육관에서 3점슛 연습을 시작한다. 그답지 않게 공은 림을 맞고 나오기 일쑤다. 밀러는 체육관 설비 담당자를 불러 골대의 높이를 확인해줄 것을 요구했다. 정규 림 높이인 3미터 5센티미터보다 낮았다. 골대 높이를 바로 잡았다. 그러자 ‘밀러타임’이 시작됐다.

마크 프라이스는 고등학교 시절 늘 자유투 연습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자유투를 50개 연속 성공할 때까지 집에 가지 않았다. 카일 코버는 코트 5개 구역에서 총 100개의 3점슛을 던지는 연습을 지금도 한다. 보통 94개 정도가 림에 꽂힌다. 확인된 자료에 따르면 최고 기록은 99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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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vs 감독' 1996년 마이클 조던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NBA리그가 인기 많던 시절. 불스의 백인가드 스티브 커는 국내 농구팬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었다.(사진 = Getty Images)

1964년 6월에 태어난 아저씨가 있다. 그는 젊었을 때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잘 나가던 슈터였다. 프라이스나 코버처럼 자신 만의 ‘루틴’을 만드는 습관이 지금도 남아있다. 심심풀이로 3점슛 연습을 하는데 늘 진지하다. 8개를 던져 6개 이상 들어가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벌칙을 준다. 벌칙은 푸쉬-업 10개다. 50세가 넘어서도 슛에 대해서만큼은 엄격한 농구 ‘덕후’의 이름은 델 커리다. 2014-2015시즌 농구계를 들었다 놓은, NBA 역대 최고 슈터의 길을 걸고 있는 스테판 커리의 아버지다.

델 커리는 현역 시절 동료들과 2대2 ‘H-O-R-S-E’ 게임을 즐겼다. 한 선수가 난이도가 높은 위치에서 슛을 성공시키면 다른 팀의 선수가 반드시 같은 장소에서 슛을 성공시켜야 한다. 실패하면 알파벳 1개를 얻는다. 그렇게 다섯 글자를 먼저 채운 팀이 패하는 방식이다.

델 커리는 16시즌 동안 40.2%의 3점슛 성공률(NBA 통산 28위)을 기록했다. 그의 동료들이 아무리 힘을 모아도 델 커리의 팀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그와 자주 팀을 이룬 동료는 NBA 선수가 아니었다.

11살의 스테판 커리였다.


태어나보니 델 커리의 아들

커리는 1988년 미국 오하이오주 북동부에 위치한 애크런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태어난 산부인과는 올해 NBA 파이널 덕분에 유명세를 탔다. 커리가 태어나기 4년 전 그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 중 한 명이 르브론 제임스다. “지금도 그 병원에서는 농구 유망주가 계속 태어나고 있을 것”이라는 커리의 농담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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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올스타전 3점슛 경연대회에 아버지와 함께한 귀여운 스테판.(사진 = Getty Image)

아버지를 따라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다. 델 커리는 샬럿 호네츠에서 10시즌을 뛰었고 밀워키 벅스, 토론토 랩터스를 거쳐 2002년 현역 생활을 마무리 했다. 커리는 가는 곳마다 ‘델 커리의 아들’로 주목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농구공을 잡았고 특히 슛만큼은 어디에서든 인정을 받았다.

커리의 슛이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커리는 고교 2학년 때까지 두 손으로 슛을 던졌다. 가슴 부근에서 슛을 던지다 보니 상대 수비의 견제를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 델 커리가 나섰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슛 폼을 완전히 뜯어고쳤다(달인 델 커리 선생은 밀워키에 머물렀던 1998-1999시즌 후배의 슛 폼을 살짝 교정해주기도 했다. 그 후배가 레이 앨런이다).

커리는 고교 4학년 시절 신장 183cm, 몸무게 73kg의 왜소한 포인트가드였다. 슛만 좋았다. 커리는 아버지가 졸업한 버지니아 공대를 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버지니아 공대는 커리에게 “농구 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농구 선수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전국구 대학교 중 커리에게 관심을 보인 곳은 없었다. 결국 커리는 아버지를 따라 오래 살았던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작은 학교, 데이비슨 대학을 선택했다.

아버지마저도 고교 시절 아들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델 커리는 “고등학교 때는 아들이 대학 1부리그 선수 정도까지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83cm에 너무 말랐다. 스테판이 1부리그에서조차 최상급 선수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2년 만에 생각이 바뀌었다. 델 커리는 “대학교 2학년 시절 경기를 보고 ‘NBA에 갈 수는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델 커리의 아들에서 NCAA의 신데렐라로

매년 3월에 열리는 미국 대학체육협회(NCAA) 남자농구 1부리그 토너먼트의 부제는 ‘광란의 3월(March Madness)’다. 이변이 속출하는 단판승부의 짜릿함, 우승후보는 쓰러지고 신데렐라는 탄생한다. 그 인기는 NBA를 능가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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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모습과 차이가?' 빨간 유니폼의 커리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사진 = Getty Image)

2008년 NCAA 토너먼트의 신데렐라는 단연 데이비슨대의 2학년 가드 스테판 커리였다. 중서부지구 10번 시드(64강 토너먼트는 4개 지역에서 나뉘어 열리고 지역마다 1번부터 16번까지 시드 배정을 한다. 따라서 10번 시드는 전체 참가팀 중 40위 정도로 보면 된다)의 데이비슨대는 커리의 맹활약에 힘입어 8강 무대에 진출했다.

데이비슨대는 1969년 이후 단 한번도 토너먼트 승리를 거두지 못하던 팀이다. 커리가 역사를 썼다. 곤자가 대학과의 1라운드에서 40득점, 2번 시드이자 전국 랭킹 8위의 우승후보 조지타운 대학을 상대로 30득점(커리는 후반 20분동안 25점을 쏟아 부어 17점차 열세를 뒤집었다), 3번 시드의 위스콘신 대학과의 16강전에서는 33득점. 데이비슨대의 돌풍은 8강에서 끝났다. 커리는 캔자스 대학을 상대로도 25점을 올리며 분전했다.

데이비슨대의 8강 진출은 ‘사건’이었다. NCAA 토너먼트가 지금의 64강 체제로 진행된 1985년부터 10번 시드를 받은 팀은 총 124개 팀. 그 중 8강에 오른 10번 시드 팀은 2008년 데이비슨대를 포함해 7개 팀에 불과하다.

당시 커리의 활약은 NBA 선수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위스콘신대와의 16강전을 직접 관람한 한 NBA 선수는 커리를 두고 “그는 NBA 어느 팀에 입단해도 팀과 함께 최고가 될 자격이 충분한 선수”라고 극찬했다.

그 선수는 바로 르브론 제임스다.

“넌 안될 거야” 여전히 냉정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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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5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그리핀, 하든 등의 동기생(?)들과 함께 NBA 리그에 입성.(사진 = Getty Image)

커리는 2008년 상반기 동안 가장 유명한 대학 농구선수였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이 있다. 다수의 NBA 관계자들은 커리가 2008년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가가 상종가를 쳤기 때문이다.

커리는 놀랍게도 대학 잔류를 선언했다.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포인트가드의 능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커리는 대학 입학 후 키가 약 8cm 자라 191cm가 됐다. NBA에서 슈팅가드로 뛰기에는 다소 작았다. 숀 레스퍼트, 트라잔 랭던 등 NCAA를 주름잡은 슈터들이 슛 하나 만으로 뚫기에는 NBA의 벽이 너무 두껍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커리는 대학 1학년 때 평균 21.5점, 2.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전국에 이름을 날린 2학년 기록은 평균 25.9점, 2.9어시스트다. 커리는 3학년 때 NCAA 64강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평균 28.6점, 5.6어시스트를 올리며 패스 능력을 키웠다. 커리는 자신과의 다짐대로 주득점원의 역할에 동료를 살리는 능력을 더했다.

“다수의 스카우트들은 커리를 포인트가드로 보지 않는다. 부족한 운동능력에 대한 우려도 상당히 많다” - ESPN의 NBA 드래프트 전문가 채드 포드

“수비가 거칠게 붙으면 고전하는 경향이 있다. 키가 작고 몸이 왜소해 골밑에서의 득점 능력이 떨어진다. 포인트가드로서 어이없는 실수를 할 때가 종종 있다” - 2009년 NBAdraft.net의 보고서

“운동능력이 부족해 NBA에서 스타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2009년 블리처리포트

2009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커리에 대한 평가는 우려가 더 많았다. 커리는 포인트가드로서의 스킬, 운동능력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움직임과 기술을 증명해내야만 했다. 그런데 커리의 잠재력을 알아본 인물이 있었다. 당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돈 넬슨 감독이었다.

대반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프로 선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행운도 필요하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과 지도자를 만나면 금상첨화. 커리의 조건은 좋았다. 골든스테이트는 2000년대 중반부터 유행한 ‘스몰볼’, 저돌적인 공격 농구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팀이었다. 넬슨 감독은 든든한 후원자였다. “사람들은 그가 포인트가드로서 볼 핸들링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포인트가드의 재능을 봤다”고 말했다. 감독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를 줄 테니 커리를 달라는 피닉스 선즈의 제안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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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원석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사진 = Getty Image)

커리는 첫 3시즌 동안 주전으로 활약했고 평균 17.5점, 5.8어시스트, 2.1개의 3점슛(성공률 44.1%)을 기록하며 NBA 무대에 안정적으로 연착륙했다. 3년 차일 때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일이 있었다. 막 부임한 마크 잭슨 감독이 몬타 엘리스를 트레이드시킨 것이다. 엘리스는 자신만큼 공격 성향이 강한 커리와의 공존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나타내곤 했다. 잭슨 감독은 커리에게 “이제 골든스테이트는 너의 팀이다”라며 힘을 실어줬다.

커리는 날개를 달았다. 2012-2013시즌부터 2년 동안 평균 23.5점, 7.7어시스트, 3.4개의 3점슛(성공률은 43.9%)을 기록하며 급성장했다. 2012-2013시즌 272개의 3점슛을 터뜨려 레이 앨런이 갖고 있었던 정규시즌 최다 3점슛 기록(종전 269개)을 갈아치웠다. 2013-2014시즌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 무대에 섰다.

커리의 눈부신 발전은 올해 모두가 지켜본 스토리로 이어진다. 2014-2015시즌 골든스테이트의 지휘봉을 잡은 스티브 커 감독은 커리에게 더 저돌적으로 득점을 노리라고 당부했다. 커리는 평균 23.8점, 7.7어시스트를 올렸고 286개의 3점슛(성공률 44.3%)을 기록해 한 시즌 최다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커리의 평균 기록은 지난 시즌(24.0?8.5)과 비교해 소폭 감소했는데 이는 골든스테이트가 ‘가비지 타임’으로 이긴 경기가 너무 많아 평균 출전시간이 약 3.8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골든스테이트는 67승15패를 기록해 NBA 전체 승률 1위 팀으로 우뚝 섰다. 커리는 정규리그 MVP를 받았다. 워리어스 선수가 MVP를 받은 것은 1968년 윌트 채임벌린 이후 커리가 처음이다. 이쯤 되니 사람들은 릭 배리의 이름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1975년 워리어스를 NBA 정상에 올려놓은 레전드다. 커리는 1975년 이후 처음으로 팀을 NBA 파이널 무대에 올려놓았고 르브론 제임스가 고군분투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4승2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40년 만에 다시 열린 황금의 시대, 그 중심에는 커리가 있었다.

포기를 모르는 ‘동안의 암살자’

커리는 코트에서 여유가 넘친다. 축구로 비유하면 ‘탈압박’ 능력이 좋다. 커리는 스크린을 활용한 2대2 공격을 펼칠 때 상대 수비수 2명이 순간적으로 자신을 둘러싸도 당황하지 않았다. 2대2 수비 방법인 스트롱 헷지(strong hedge)와 더블(double)의 목적은 드리블러를 강하게 압박해 드리블을 포기하거나 외곽에 있는 동료에게 의미없는 패스를 하도록 만드는 것. 그러나 커리는 그런 상황에서조차 빈 틈을 노렸다. 자신을 막던 빅맨이 뒤로 물러나는 틈이 보이면 슛을 던졌고 공을 안전하게 간수하다 공간이 열려있는 동료를 찾아 패스를 연결했다. 볼 핸들링 논란은 끝났다. 최정상급 볼 핸들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대처법이다.

커리가 종종 하는 이색 훈련이 있다. 일종의 ‘불빛 드릴’이다. 커리가 흰 벽 앞에서 드리블을 한다. 벽에는 약 10개의 전구가 붙어있다. 커리가 드리블을 할 때 한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커리는 방향 전환이든 비하인드-백-드리블이든 자신이 하던 드리블을 멈추지 않은 채 한 손으로 전구를 만진다. 다시 드리블, 이번에는 다른 전구에서 불빛이 나온다. 또 전구를 만진다.

중요한 것은 어느 위치의 전구에 불이 들어오든 커리는 드리블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지역 언론 ‘SF 크로니클’은 커리의 연습을 보고 ‘미친 테스트(insane test)’라고 표현했다. 커리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불빛은 코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정한 것이다. 수비수가 내 앞으로 붙을 때 먼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인식해야 하고 내가 하려고 한 동작이 무엇이든 계속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커리는 고교 시절 슛 블락을 자주 당하는 슈터였다. 아버지를 믿고 슛 폼을 뜯어고쳤다. 슛 폼을 바꾸고 다시 정상급 슈터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커리의 고등학교 감독은 “아침 6시에 체육관에 나가보면 늘 커리 부자가 있었다. 커리는 가장 먼저 체육관을 찾아 가장 늦게 체육관을 떠나는 아이였다”고 말했다. 커리는 NCAA 입성 당시 무명 선수였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를 전국구 스타로 격상시켰다. 여전히 NBA에서의 성공 가능성은 어두웠다. 커리도 알았다. 커리는 끝 없는 연습을 통해 자신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렇게 NBA에 왔고 여전히 회의론자들의 시선은 냉정했지만 커리는 데뷔 6시즌 만에 ‘최고’가 됐다. ‘RUN TMC’(팀 하더웨이, 미치 리치몬드, 크리스 멀린), 크리스 웨버, 라트렐 스프리웰 등 골든스테이트를 거쳐간 슈퍼스타들도 이루지 못했던 우승의 한을 풀어줬다. 올스타 투표에서 가장 많은 팬 투표를 받은 선수가 됐고 자신의 이력에 MVP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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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하더웨이, 미치 리치몬드, 크리스 멀린.. NBA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이라도 들어봤을 그 이름들. 그 좋은 멤버로도 하지 못했던 황금을 캐는 작업(?)을 커리는 해냈다.(사진 = Getty Image)

역대 넘버원 슈터의 길을 걷는다

앞서 언급한 카일 코버의 슈팅 드릴을 스테판 커리가 따라한 적이 있었다. 현역 시절 시카고 불스에서 코버와 한솥밥을 먹었던 브라이언 스칼라브라인 전 골든스테이트 코치가 제안했다. 커리는 3점슛 100개를 던져 94개를 림에 꽂았다. 그 중 77개를 연속으로 성공시켰다.

아버지 델 커리는 현역 시절 슈팅 릴리스(공을 잡고 던지기까지 걸리는 시간)가 빠르기로 유명했다. 물리적으로 가능한 최소 시간은 0.4초. 델 커리는 0.4초에 근접했다. 커리 역시 슈팅 릴리스가 굉장히 빠르다. 아버지 수준이거나 아버지보다도 빠르다는 평가가 있다. 커리는 스팟-업-슈터가 아니다. 드리블을 하다 날리는 슛의 정확도가 일품이다. 농구를 해본 사람은 안다. 보기보다 정말 어려운 기술이다.

스티브 커 감독은 NBA 플레이오프 기간에 “커리와 같은 슈터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커가 누구인가. 현역 시절에는 ‘마이클 조던 옆에 있는 키 작은 백인 선수’로 유명했지만 NBA 통산 3점슛 성공률 부문에서 45.4%로 역대 1위에 올라있는 레전드다.

커 감독은 “볼 핸들링이 다르다. 나는 마크 프라이스와 같은 시대에 뛰었다. 프라이스는 뛰어난 볼 핸들러였고 빨랐으며 풀업 점퍼를 굉장히 잘 던졌다. 커리는 스티브 내쉬와도 비교가 된다. 내쉬는 패스를 더 선호하는 선수였지만 드리블을 하다 던지는 슛이 굉장히 정확했다. 그러나 나는 커리처럼 빠르고 공간을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며 3점슛 라인 한참 뒤에서도 두려움 없이 슛을 던지는 선수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 TNT 농구 해설위원이자 독설가 찰스 바클리는 오래 전부터 “점프-슈팅 팀은 절대로 우승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 커리가 그 편견을 깼다. 포인트가드를 간판으로 앞세운 팀이 NBA 정상을 차지한 것은 1990년 아이재이아 토마스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이후 골든스테이트가 처음이다. 게다가 커리와 같은 슈터가 리그를 평정한 것은 NBA 역사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커리가 슈터의 개념을 초월한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프라이스와 내쉬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들을 단지 슈터라고 부르지 않았다. 포인트가드라고 불렀다. 볼 핸들링이 약점이라고 지적받았던 커리는 불과 7년 만에 최정상급 슈팅형 포인트가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커리는 프라이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자 내쉬의 공격 특화형 버전이다.

커리는 역대 넘버원 슈터의 길을 걷고 있다. 정규리그 최다 3점슛 기록(286개)을 보유했다. 올해 포스트시즌 21경기에서 98개의 3점슛을 넣어 단일시즌 플레이오프 최다 3점슛 기록을 다시 썼다. 종전 기록은 레지 밀러의 58개. 밀러는 58개를 넣기까지 22경기를 치러야 했다.

또한 커리는 통산 3점슛 성공률 부문에서 44.05%로 커 감독(45.40%), 허버트 데이비스(44.09%)에 이어 역대 3위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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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전국구 스타(?)로 발돋음한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라일리. 그리고 대학시절부터 옆에서 묵묵히 있어준 고마운 아내와 함께 즐기는 챔피언 퍼레이드.(사진 = Getty Image)

2승2패로 막을 올린 NBA 파이널 5차전. 경기 내내 끌려가던 클리블랜드가 4쿼터 중반 르브론 제임스의 3점슛으로 스코어를 뒤집었다. 오라클 아레나가 침묵에 빠졌다. 그러나 곧바로 커리의 재역전 3점슛이 터졌다. 시리즈 내내 자신을 괴롭히던 매튜 델라베도바를 앞에 두고 화려한 풀업 점퍼를 터뜨렸다. 오라클 아레나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사실상 NBA 파이널을 끝낸 장면이다.

르브론 제임스는 벼랑 끝에 몰린 6차전을 앞두고 “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라며 필승의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6차전 승자는 골든스테이트였다. 우승이 확정된 뒤 기자회견에서 클레이 톰슨이 입을 열었다. 제임스의 발언을 패러디 해 “이런 말을 하게 돼 기분이 좋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선수와 함께 하는 세계 최고의 팀이다”라고 말했다.

클리블랜드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커리는 오클랜드로 돌아와 귀여운 딸 라일리와 함께 우승 퍼레이드에 나섰다. 이제 커리는 모두가 우러러 보는 존재가 됐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무명이었던 커리가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서기까지 딱 8년이 걸렸다. NBA에서 이 같은 신데렐라 스토리가 다시 또 나올 수 있을까.

2015/06/22 15:04 2015/06/2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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