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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브 루스, 테드 윌리엄스, 윌리 메이스, 미키 맨틀, 행크 애런, 배리 본즈, 앨버트 푸홀스, 미겔 카브레라.

당대를 호령한 이들의 전성기 타순은 모두 3번이었다. 3번 타자라 등번호가 3번이었던 루스는, 자신이 루 게릭(4번)보다 먼저 등장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홈런과 타점의 생산력이 뛰어난 타자가 4번을 담당한다면, 3번은 여기에 출루 능력까지 겸비해야 하는 자리다(한편 클린업 히터는 4번 타자를 말한다. 따라서 3-4-5번을 의미하는 클린업 트리오라는 말은 없다).

마이크 트라웃, 조이 보토, 카를로스 곤살레스, 야시엘 푸이그, 데이빗 라이트, 그리고 추신수. (조너선 루크로이, 러셀 마틴, 데릭 노리스)

올해 2번 타자로 출장한 선수들의 명단이다.

과거 2번 타자의 이미지는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난 타자, 즉 번트를 잘 대고 히트앤드런을 잘 소화할 수 있는 타자였다. 감독들은 3,4번 타자가 타점을 올릴 수 있게끔 1번 타자를 득점권에 데려다 놓는 것을 2번 타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했다. 이에 2번 타자는 주자 1루시 1루수와 2루수 사이 넓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좌타자인 경우가 많았고, 장타력보다는 컨택트 능력이 중시됐으며 빠른 발을 통해 더블 플레이를 막아낼 수 있는 타자가 중용됐다.

1999년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역대 7번째이자 마지막 1000득점 팀이다(지난해 득점 1위에 오른 에인절스는 773득점을 올렸다). 갈수록 짙어지고 있는 투고타저로 인해 그 해 1009득점을 기록한 클리블랜드가 '최후의 1000득점 팀'이 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1999년 클리블랜드의 2번 타자는 오마 비스켈이었다. 빠른 발과 뛰어난 번트 능력을 보유한 비스켈은, 그야말로 2번 타자의 이상향과 같은 선수였다.

'투수들의 악몽' 1999 클리블랜드 상위 타선
1. 롭튼  :  .301 .405 .432 /  7홈런 25도루
2. 비스켈 :  .333 .397 .436 /  5홈런 42도루
3. 알로마 :  .323 .422 .533 / 24홈런 120타점
4. 매니  :  .333 .442 .663 / 44홈런 165타점
5. 짐토미 :  .277 .426 .540 / 33홈런 103타점

1979년.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일이 메이저리그에 일어났다. 빌 제임스가 2년 전의 저조한 판매량(70여부)에도 1979년판 'Baseball Abstract'를 다시 낸 것이다. 추후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된 이 책의 핵심은, 타율 홈런 타점 등 눈에 보이는 화려한 지표들에 가려져 있는 득점이야말로 야구의 근본이라는 것이었다. 야구는 결국 상대보다 '더 많은 득점'을 올려야 이길 수 있는 경기다.

1997년 또 하나의 책이 큰 화제를 몰고 왔다. 톰 탱고 등이 지은 'The Book : Playing the Percentages in Baseball'이었다(탱고는 FIP라는 BABIP 이론의 결정판을 만들어냈다). wOBA가 처음 소개된 그 책에는 흥미로운 다른 내용도 들어 있었다. 팀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를 2번에 배치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2번 타자는 3번 타자보다 더 많은 타석에 들어선다(연간 18타석). 반면 2번 타자가 가지게 되는 타점 기회는 3번 타자와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3번보다 2번에 더 강한 타자를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강한 타자는 가장 많은 타점 기회를 가지는 4번에 둔다.

실제로 존 드완이 2006시즌 기록을 가지고 계산해 본 결과, 2번 타자는 3번 타자보다 평균 17타석을 더 들어섰다(타순이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15~20타석씩 줄어듬으로써, 1번 타자는 9번 타자보다 무려 142타석이 더 많았다). 연간 15~20타석을 더 들어서는 타자가 '황금의 10년'(.331 .426 .624 1.050) 시절의 푸홀스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이다.

반면 2번 타자는 3번 타자보다 28명의 주자가 더 적은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는데(1번 259명, 2번 323명, 3번 351명, 4번 363명, 5번 333명) 탱고 등에 따르면 이는 큰 차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팀 최고의 타자가 생산 능력보다 출루 능력이 더 뛰어난 스타일이라면 2번으로 가는 것이 팀의 득점력에 훨씬 유리했다. 이렇게 '강한 2번'을 사용했던 팀은 1번 지미 롤린스와 3번 라이언 하워드 사이에 2번 체이스 어틀리를 자주 배치했던 2006~2008년의 필라델피아 필리스다.

2013년 신시내티는 내셔널리그 출루율 1위(조이 보토 .305 .435 .491)와 2위(추신수 .285 .423 .462) 타자를 모두 보유하는 축복을 누렸다. 그러나 신시내티의 심각한 문제는 1번 추신수와 3번 보토 사이 2번에 잭 코자트(.254 .284 .381)가 끼여 있다는 것이었다. 코자트는 전통적인 2번 타자의 역할(진루타)까지 전혀 해내지 못하며 공격의 연결 고리를 번번히 끊었다.

만약 신시내티의 감독이 조 매든이었거나 단장이 빌리 빈이었다면 만세를 부르며 보토를 2번으로 썼겠지만 '올드 스쿨'의 대표주자였던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보토에게 단 한 번도 2번을 맡기지 않았다(반면 빌리 빈은 조시 도널슨을 자주 2번으로 썼다). '보토는 2번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라는 많은 사람들의 주장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신시내티는, 마침내 올해 보토를 2번으로 내보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 텍사스와 추신수의 상황이 2013년 신시내티와 보토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다.

올해 텍사스는 지난해 추신수의 부상 공백을 포함해 1번 타자로 나선 40경기에서 .298 .354 .391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준 레오니스 마틴(27)을 1번 타자로 쓰고 있다(지난해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평균 출루율은 .314였으며 1번 타자 평균은 .326였다). 대표적인 '프리 스윙어'였던 마틴이, 출루 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1번 타자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추신수에게 20도루를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다.

문제는 시즌 첫 두 경기처럼 프린스 필더-애드리안 벨트레-추신수가 3-4-5번을 맡고 엘비스 안드루스가 2번으로 나서는 경우다. 안드루스는 2009년 9번, 2010년 1번에 이어 5년 연속으로 텍사스의 2번 타자를 맡고 있다. 번트 능력이 뛰어난 안드루스는 특히 번트를 사랑하는 론 워싱턴 감독의 총애를 받았다(안드루스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기록한 66개의 희생번트는 ML 최다였다).

하지만 2013년부터의 안드루스는 더 이상 뛰어난 2번 타자가 아니다. 2010-2012년 3년 간 .346였던 안드루스의 출루율은 2013년 .328, 2014년 .314로 떨어졌으며 2013년 19개에 이어 지난해에는 21개의 병살타를 기록함으로써 리그에서 네 번째로 많았다(2013년 42도루/8실패, 2014년 27도루/15실패). 지난 시즌의 안드루스는 영락없는 잭 코자트였다.

통산 득점권 성적
추신수 : .275 .406 .437 .842
벨트레 : .270 .351 .445 .796
필더  : .283 .425 .475 .900

텍사스는 1번 타자 다음으로 출루 능력이 중요하며 1번 타자보다 더 뛰어난 생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2번에 제격인 타자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 통산 출루율이 현역 9위(.383)인 추신수다(안드루스가 40개의 병살타를 친 지난 2년 간 추신수는 12개를 기록했다). 2013년 많은 사람들이 '2번 보토'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이유는 3,4번에 제이 브루스와 브랜든 필립스라는 준수한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텍사스에도 벨트레와 필더라는 훌륭한 3,4번 타자들이 있다. 지난해 트라웃을 '2번 타자 MVP'로 만든 에인절스는, 심지어 조시 해밀턴이 전력에서 이탈한 올해도 트라웃을 2번으로 쓰고 있다(3번 푸홀스, 4번 조이스or프리스).

물론 추신수가 2번으로 가면 5번에 공백이 생긴다. 그러나 드완의 계산에 따르면, 2번은 5번보다 연간 52타석을 더 나서며 타석에 들어섰을 때 주자의 차이도 단 10명에 불과하다. 5번 추신수는 텍사스에게 큰 손해인 셈이다.

제프 배니스터 감독이 추신수를 2번으로 쓴 첫 경기에서, 텍사스는 5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10-1의 대승을 거뒀다. 추신수(5타수2안타 홈런 3타점) 벨트레(5타수2안타 홈런 1타점) 필더(5타수2안타 1타점)의 2-3-4번은 6안타 5타점을 합작했으며, 5번을 맡은 라이언 루아도 5타수3안타(2루타)로 제몫을 다했다.

제너럴 매니저(단장)가 팀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메이저리그에서 필드 매니저(감독)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그런 감독이 유일하게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은 라인업 카드를 쓰는 일이었다(그러나 최근에는 빌리 빈을 필두로 라인업 구성에까지 관여하는 단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텍사스에게 있어 과연 최적의 라인업은 무엇일까. 답은 배니스터 감독에게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다.

현역 통산 출루율 순위(3000타석 이상)
1. 조이 보토 : .417
2. 앨버트 푸홀스 : .403
3. 조 마우어 : 401
4. 미겔 카브레라 : 396
5. 프린스 필더 : .388
6. 맷 할러데이 : .385
6. 앤드류 매커친 : .385
8. 알렉스 로드리게스 : .384
9. 추신수 :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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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0 13:36 2015/04/1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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