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씨네21 김혜리 기자가 네이버에 연재 중인 '김혜리칼럼'의 원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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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납북된 도시, 송두율의 현재진행형 도시, 윤이상의 도시, 세계 최대의 북한 대사관이 있는 도시.” 류승완 감독이 규정하는 베를린의 좌표다. 즉, 베를린은 남북한 대치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간들-첩보원들-의 드라마를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아랍 세력이 그물을 이룬 국제정치 지형도 위에서 펼쳐 볼만한 장소다.

그런데 오늘날 스파이들의 업무는 과연 무엇인가? 신원조회에도 잡히지 않는 북한의 특급요원 표종성(하정우)은 무기를 거래하는 한편 동지들의 당성을 감시한다. 남한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는 정부가 북한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는데 유용한 정보를 수집한다. 정진수는 아랍 반제국주의 테러 조직과 북한의 무기거래 현장에 덫을 놓고 잠복하던 중 표종성과 맞닥뜨리고 북한 수뇌부 비밀계좌로 인도할 실마리라 판단해 뒤쫓는다.

그러나 표종성을 노리는 자는 정진수만이 아니다. 평양에서 갑자기 파견된 고위층 자제 동명수는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표종성의 아내인 통역관 련정희(전지현)의 반역 혐의를 제기하고 이어 종성과 각별한 관계인 대사 리학수(이경영)가 망명을 기도하다 발각된다. 동명수의 협박과 리학수의 경고, 아내의 원망, 정진수의 추격에 포위된 표종성은, 목숨과 목숨 같은 신념을 동시에 위협받으며 달리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물을 냉철한 프로페셔널로 묘사하지만 <베를린>은 결코 쿨한 영화가 아니다. 고독을 강조하는 센티멘털한 신도 없거니와 캐릭터들은 호소하느니 침묵하고 분노보다 이죽거림을 택하는데도 <베를린>은 뜨겁다. 액션 세트피스의 초점이 저격이나 공격보다 방어와 생존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고, 굳이 격투 신이 아닌 장면에서도 주요 인물의 크고 작은 몸짓에 히스테리와 울화가 깃들어있는 탓이다. 표종성의 흠집투성이 육체는 기물을 부수기보다 부딪쳐 나가떨어지며, 류승완 감독의 오랜 영웅 성룡의 그림자가 어른대는 다단계 추락 신에서도 우아한 착지 따윈 없다. 게다가 <베를린>에서 가장 감정이 고양되는 대목은 가장 길고 무거운 막판의 액션 시퀀스다.

엄밀히 말해 현대 첩보활동의 세부를 감탄스럽게 재현한 장면이 없는 <베를린>은 본격적 첩보영화라기보다 스파이가 직업인 인물들이 치고받는 액션영화다. 영화 속 도청, 정보거래, 암호 해독 신들은 스펙터클이라기보다 과거 첩보장르에 관한 경의와 애착의 표명에 가깝다.

무엇보다 <베를린>은 극장을 나서며 관객들이 이마를 맞대고 웅성웅성 답안지를 맞춰볼 법한 영화다. 예닐곱 진영이 각기 상이한 목표를 갖고 움직이는데다가 거창한 맥거핀(극적 호기심을 유발하지만 본론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미끼)이 초반에 버티고 있어, 클라이맥스까지 플롯을 발맞춰 따라가기 용이하지 않다. 이는 영화를 즐기는 데에 결정적 장애는 아니지만 한번 인과관계를 놓치면 시퀀스 단위의 서스펜스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워쇼스키 감독의 영화는 얽히고 설킨 플롯이 현대 관객의 흥미를 부채질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그들의 영화가 의도된 공백으로 관객의 상상과 토론을 부추겼다면, <베를린>의 관객이 겪는 혼란은 정작 영화가 낱낱이 설명하려고 애쓰는데도 말귀를 알아들을 수 없는 갑갑함이다.

첩보 액션 스릴러 <베를린>이 뜻밖에도 멜로드라마적 여운을 강하게 남긴다면, 실제 로맨스의 부피가 커서가 아니라, 멜로적 서사는 단순 명백한 반면 멜로 아닌 이야기는 기억하기 버겁게 엉켜있기 때문이다. <베를린>을 러브스토리로 각인시키는 또다른 요인은 북한말이 지닌 미묘한 온기를 백분 살린 련정희와 표종성 부부의 대화. “무사합네까?” “아무렇지 않다. 내래 늦지 않게 데리러 가갔어.” 같은 뚝뚝한 통화의 뉘앙스는 관객의 심장에 아프게 얹힌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류승완은 스토리텔링보다 대사에 강점이 있다.

전반부 잔가지 서사의 최종적 의미를 깨닫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채워주는 것은 미묘하게 상이한 톤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이다. 하정우의 표종성은 <황해>의 들개 같은 인물 구남에다 아집과 민첩함을 더한 남자다. 한석규는 면도기, 커피, 옷깃 등 소도구를 끊임없이 활용하며 너스레로 감정을 덮는 복잡한 연기를 보여준다. 다만, 정진수는 표종성과 뜻하지 않은 짝패를 이루는 감정과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이야기를 작동하는 장치로 이용된 인상을 남긴다. 스페셜리스트로서 업무의 효율을 방해하는 관료주의에 반발하는 의지가 더 부각될 필요가 있었다.

류승범의 동명수는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온 재벌 2세 망나니같은 포즈를 취하며 예의 텍스트 바깥으로 뛰쳐나갈락말락하는 연기로 긴장과 리듬을 불어넣고, <4인용 식탁>무렵의 담백하고 건조한 얼굴로 돌아간 전지현은 시놉시스 상으로는 백지에 가까웠던 련정희 캐릭터에 확고한 성격을 부여한다.

<본>시리즈와 <베를린>의 유사성은 널리 이야기되는 바와 달리 액션이나 캐릭터가 아니라 영화의 종장에 집중돼 있다. 그리고 이 닮음은 <베를린>의 독창성을 상당히 갉아 먹는다. 비슷한 피날레가 암시하는 제이슨 본의 최대 이슈는 속죄지만 표종성의 그것은 복수다. 아니, 우리는 어쩌면 <베를린>의 에필로그를 일종의 의례적 추신으로만 접수하고, 류승완이 진정 하려던 이야기는 에필로그 전에 끝났거나 미처 완결되지 못했다고 이해해야 할지도 모른다.

표종성과 정진수는 구태의연한 ‘올드 보이’다. 정보국 요원이 되기까지 교육받은 원칙이 이미 구문이 되어버린 시대에도 표는 당성을 최고의 규범으로 여기고 정은 ‘빨갱이’란 단어로 논의를 일축한다. 말하자면 두 사내는 존 르 카레의 첩보소설에 나오는 스파이들처럼 적국의 체제에 통달한 나머지 그 장점까지 꿰뚫고 있는 회의주의자들이 아니다. 여기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더없이 확고한 강성분자인 두 남자 사이에 정치적 신념이 전혀 화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설득을 도모하지 않는다. 개인이라면 수치스럽게 여길 훼절을 아무렇지 않게 범하는 국가의 뻔뻔함이 둘의 공적(公敵)일 뿐이다. 남북 대치 상황은 소재로 취한 기존 한국 대형 블록버스터는 많았지만 <베를린>의 진짜 관심사는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우리는 누구의 속국도 아니라는 자존심 하나로 서방 사회에서 외로이 싸우다 정치논리에 배신당하고 지쳐가는 북한 첩보원의 이야기다. 영화를 실컷 보고 난 다음 “과연 남측 진영의 등장이 이 스토리에 불가결했을까?”라고 실없이 자문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베를린>(The Berlin File)
출연: 하정우(표종성), 한석규(정진수), 류승범(동명수), 전지현(련정희), 이경영(리학수) ,곽도원(곽병규), 김서형(북한 대사 비서)
감독: 류승완, 각본: 류승완, 촬영: 최영환, 편집: 김상범, 김재범, 음악: 조영욱 무술감독: 정두홍, 한정욱
상영시간: 120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1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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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김혜리 기자 칼럼

2013/02/06 22:08 2013/02/0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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